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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삶

<북한산>홀로 걷는 즐거움(feat.미세먼지)

하얀 설산이 보고 싶었다.

그보다 그냥 어디든 가고 싶었을수도.

하얀 설산을 보려면, 추위와 싸워야 하고, 그만큼 장비도 필요하고, 혼자가기엔 좀 위험하고... 주절주절..

그래서 날 풀리면 어디든 가야지,

하고 선택한 곳이 '북한산'.

날은 풀렸지만, 공기는 더럽게 좋지 않은 주말에,

미세먼지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초행길임을 감안하여,

나의 지인 중 최고 산녀가 최근에 다녀온 루트를 참고하여, 

출발.  

 

오늘의 노선은

불광동 대호아파트 등산로 입구 - 족두리봉 - 향로봉  - 비봉 - 사모바위 - 승가봉 - 청수동암문 - 문수봉 - 대남문 - 대성문 - 보국문 - 대동문 - 용암문 - 위문 - 백운대- 위문 - 백운산장- 산악구조대 - 백운탐방센터 하산

대략 13KM, 산행 시간은 7시간을 예상했다.

 

먹을 것을 (많이)싸고, 혹시 몰라 아이젠도 챙겨넣고,

하산 후 모임참석을 위해 갈아입을 옷을 챙기니,

박배낭이 되었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괜찮을꺼야.

 

괜찮지 않았다.

북한산의 악명은 익히 들었으나...(나에게 어떤 산 인들 쉬우랴...)

초반에 향로봉, 비봉에 오르는 길은

네 발을 사용해서 기어올라가야 하는 바위가 엄청나게 많았다.

물론 바위에 디딤역할을 하는 홈들이 있어서

내가 신은 릿지화로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정도였으나...

그건 일반적인 몸상태였을 때 가능한 일이었고,

계속된 바위산 등반에

날은 더워지고, 가방은 점점 무거워지고, 스틱은 거추장스럽고,

없던 고소공포증마저 생길 것 같은, 

거지같은 내 몸뚱아리는 바위에 오르기를 점점 거부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회로는 없다.

A ㅏ......  이 난감함을 어째야 하나.

한동안 바위 한켠에 붙어서서 바위 한번 보고, 다른 사람들 올라가는거 한번 보고,

사람들이 내 얼굴을 쳐다보고 올라가고(다들 어찌나 스파이더피플 같던지...)

나느 보고, 사람들은 지나가고를 반복하다,

아주 천천히 겨우겨우 바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모습이 어떻든, 다른 사람이 비웃든 말든,

나는 배낭의 무게때문에 뒤로 자빠지지 않을까만 걱정하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를 외치며 한 발씩 올랐다.   

순간, 누군가가 도와줬으면 좀 쉽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 길은 내가 혼자 올랐어야 하는 길이었다.

아무도 내 몸을 들어올려주지 않을테고,

또 나는 공중을 나는 재주가 없으니.

긴장감에 심장이 쫄깃, 식은땀이 줄줄 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아, 아니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되뇌이며...)

 

 

 

 

 

 

초반 각종 버라이어티한 봉들을 지나 사모바위의 위엄을 잠깐 감상 후,

한적한 곳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혹시 산이 좋아서, 또는 어딘가로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요즘 내가 꽂혀있는 '김밥'을 먹기 위해 산에 온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신나게 김밥을 말았던 게 아닐까.... (먼 산...)

 

 

 

재미난 바위문도 지나고,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칼계단을 오르고

줄 하나에 몸뚱어리를 의지해 오른 끝에

백운대 정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들 어디서 왔는지,

백운대 오르는 계단과 암벽은

정말 인파로 새까맣게(아니, 알록달록하게) 뒤덮혀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은 줄었다더니,

각종 언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엄청 많아서 깜짝.

청바지에 운동화신고 정상에 오르는 그들을 보고,

또 한 번 깜짝.

인증샷 찍느라 그 낭떠러지 외길을 길막하는 커플들 보고

한 번 더 까암짝.

여기까지 올라와서 정상 태극기는 한번 보고 가야지, 했다가

올라가는데 또 30분쯤 걸릴듯 해서(올라가는 길에도 여전히 인증샷에 목마른 사람들이 길막길막길막을 하고 있었기에) 

정작 정상은 패스.

 

 

 

내려오는 길에서는

아까의 그 쫄깃함은 온데 간데 없이,  

기분이 날아갈 듯 하였다.

그러다가 살짝 언 길에서 날아갈 듯 궁디팡도 한번 해주시고.

내려오면서 본 인수봉(이제까지 북한산 정상이 인수봉인줄...  백운대, 미안.)

아직 하얗게 얼어있는 계곡조차,

너무 너무 멋졌다.

내려오는 길이었으니까.

 

 

 

혼자, 그것도 초행길을 가는 것은 아직도 두렵다.

이것 저것 신경쓰느라

주위를 제대로 못보기도 하고,

절경을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홀로 걷는 시간 동안은

정말 오롯이 혼자의 생각에 집중(물론 완만한 산행길에서만.... 심한 경사에선 생각이고 나발이고...)할 수 있으니,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도

자주자주 홀로 걸으려 한다.

설사 그 시간 동안

정말 아무생각도 없이 멍, 하게 있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나에게 분명 쉼, 이었을테고,

그 시간은 또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 이 될 수 있을 테니,

오늘도 홀로, 걷는다.